티스토리 뷰

감상일기

출판하는 마음

아무튼 쓰고 그림 2018. 7. 2. 05:33

ㅊㅊㅊ: 예를 들어 노동 관련 책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일본소설<졸업>,<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2. 한국이 싫어서 - 책이란 것은 나에게 그저 오락의의미였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소설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것도 굉장히 쉽게,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는 데에 굉장히 놀랐다. 소설은 아니지만, 사회문제를 쉽고 흡인력 있는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마흔두 개의 초록 - 부드러운 활자였지만 단단함이 느껴졌다. 읽을 때마다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누구에게도 쉬운 삶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따뜻한 언어로, 어렵지 않고 단단하게 풀어내면서 읽는 이도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평생 읽은 책들 중 <검은 마법과 쿠페 빵>은 각별하다. 여자아이의 십대 시절을 그린 성장소설. 

아무리 아픈 이별이라도 언젠가는 극복되리라는 것을 아는 공허함,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사람도 언젠가는 잊혀지리라는 것을 아는 서글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1인출판사 세 곳이 '아무튼'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저자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라 되는 한 가지에 대해 원고지 300~ 400매 분량으로 경험과 취향을 풀어낸다. ('아무튼, 비건' 읽고 싶은데 어디에도 없는건 왜때문이죠..)

국내 민음사 독서모임 '브릿G(britg.kr)'

<만만한 출판제작>: 제책, 종이 , 스캔, 출력, 인쇄, 후가공 등 출판제작의 각 단계와 제작처와 커뮤니케이션, 원가 분석 등 출판제작 실무자가 맡게 되는 업무를 정리한 책. 

<B컷: 북 디자이너의 세번째 서랍>: 책의 표지로 채택되진 못했지만 디자이너 마음속 서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또 다른 제2 제3의 표지와 그들의 디자인 입문 계기, 디자인 철학을 담은 책. 

<프라하의 묘지>: 이세욱 번역(굉장히 독특한 표현, 낯선 언어를 만날 수 있음)

<모비 딕> 김석희 번역

<위대한 개츠비>: 김영하 번역.(의미를 넘어선 번역)

이 책을 읽고 유유 출판사가 1인 출판사라는 거 처음 알았다. 코난북스 같은 출판사도 이름이 그럴듯해서 1인출판사인지도 몰랐다. 약간 자격지심 갖는게 글에서 보였는데 그러지 않으셔도 될듯. 나같은 독자는 표지랑 내용만 중요하지, 저 출판사가 1인 출판사인지 뭔지 1도 신경 안 쓰고 읽기 때문이다.... 

박태근 알라딘 MD 코너 256쪽에는 사진이 나왔다. 100층 높이의 책이 100채 정도 쌓여있는 사무실인데 무슨 그림 속 한장면 같았다. 왜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꼈냐하면 일단 저렇게 층층히 아파트처럼 쌓으면 맨밑에 있는 책은 어떻게 뺄 것이며, 저 많은 책을 어떻게 다 보고 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 것이며, 그리고 혹시라도 바닥에 좀벌레가 많이 살진 않을까 걱정 되었다. ㅠㅠ 사진 한장 봤을 뿐인데... 나 정말 프로 걱정러...

인터뷰는 처음엔 신선했는데 뒷부분은 약간 지루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 놓으니 역시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는걸 알게해주었다. 책 한 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구나 체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그러니 나도 빨리.. 나의 그림책.. ㅠㅠ ... 




7

"분업은 사회의 생산물들, 사회의 힘, 사회의 향유를 증가시키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 각각의 능력을 빼앗고 감퇴시킨다" 라고 일찍이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가 분석했듯이, 거대한 시스템에 하나의 부속으로 끼워져 파편화된 노동을 수행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할수록 '총체적' 삶에는 무능해지고 만다. 그리고 무능과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례와 불통을 낳는다. 그렇다고 일일이 자급자족하거나 경험하기는 불가능한 일. 대신에 노력은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땜다 일하는 사람의 고충이나 보람 같은 이야기를 듣고 읽고 보고 쓰려 한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반드시 자신이나 타인의 노동을 관찰하고 글로 써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간접 체험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9

사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책을 집필했다기보다 글 쓰는 기술자로 참여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나를 다 부어넣은 첫 책, 단독 저자로 데뷔한 책은 지금은 절판된 <올드걸의 시집>이다. 

(...) 이게 과연 책이 될 만한 글인가 회의하는 내게, 자신이 위로 받았으며 책으로 엮어 두고두고 읽고 싶다고, 순전한 제 욕심인데 아마 자기가 이렇게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소신이 나의 용기가 되었다. 적어도 한 사람의 독자는 확보한 거니까. 최초이자 최후의 독자가 되어주는 사람이 편집자로, 마치 마라토너의 페이스메이커처럼 내 옆에 있었다. 외롭지 않았다. 


12

"그 글은 좋지만 그게 책이 될 순 없어요."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글과 책, 저자와 독자, 의미와 상품, 도덕과 시장의 길항으로 움직이는 출판 시장의 원리를 내 방식대로 조금씩 파악했다.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저자는 외부자의 시선을 갖기 어렵기에 편집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좋은 출판사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18

책은 대단하진 않지만 "삶과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읽어내기 힘든 현실 세계와 접촉하도록 도와준다"(장뤽 낭시) 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여전히 소중하다. 

"이 책을 다른 출판사가 발행했따면 구매할 텐가?" 이 시험은 다음과 같이 경험상의 여러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무 페이지나 찔렀을 때 피가 나는가? 한 단락을 건너뛰었을 때 경험을 놓쳤다는 생각이 드는가? 책을 읽을 때 목 뒤의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지는가? 본인 서재에 소장할 의향이 있는가? 수년이 흐른 후에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보고 흐뭇함을 느끼고 그 책을 한 번이 아니라 다시 읽는다는 즐거움에 마음이 설렐 것인가? - M. 링컨 슈스터 <편집의 정석>


43

이십대에 붐비는 지하철에서 '은는이가'로 씨름하며 조사의 힘을 터득한 그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을' 먹었다가 아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라는 제목으로 언어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독자로 하여금 한 번 더 쳐다보고 이상하게 손이 가는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52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첫 직장 출퇴근길, 서울에서 인천으로 왕복 세 시간 '지옥철'코스를 통과하면서 그는 그때 인간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경험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많은 사람 틈에 끼어, 정말이지 안 떨어지려고 겹에 겹으로 싸여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걸까. 살아야 할 어떤 목적도 없고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조여드는 사람들은 더 싫었다. 


80

저자는 자기 글의 최초 독자다. 저자가 최초로 위로받는 독자인 게 맞다.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글은 타인도 위로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글감이 되지 못하는 내용은 잘난 척이 될 만한 것들, 과시하는 내용들이다. 자기 경험이나 고백에서 얻어낼 지혜와 공감의 지점이 없는 글은 지면 낭비가 될 수 있으므로 굳이 글로 남기지 않는다. 

82

자신의 실존과 관련된 비혼, 여성, 출산, 육아 등 이삼십대 여성의 삶을 정치와 정책으로 연결해보고 싶다. 가령 최저임금제, 육아수당, 거주 문제에 대해 써내려갈지도 모르겠다. 어떤 주제든 복잡한 사안을 쉽게 풀어내고 싶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고, 공부가 내공이 되기까지 숙성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85

작가 강연에도 열심히 간다. 신촌 작은 서점 '이후북스'에서 매달 열리는 '사람책- 작가와의 만남'에는 거의 참석하는 편이다. 직접 작가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그들이 자신에 삶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목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활자로 대신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 말이다. 나 역시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하자는 다짐을 한다. 또한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책을 많이 남겼음에도 늘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써내려가는 작가들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생각한다. 



101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있는 사람, 말할 때 입이 절로 벌어지는 주제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게 직업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아이처럼 좋아요, 좋아요를 연발하는 그는 이를테면 이런 글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언어의 결이 섬세하고 미묘해서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것.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 적절하고 적확한 단어, 평범한 단어인데 낯선 곳에 쓰면서 새로운 쓰임새와 의미가 생겨나는 것."

(...) 소설을 번역할 때에는 번역자가 창조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조금 더 많아진다. 설명적인 글은 원작의 의미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문학 작품은 그것에 더해 언어의 아름다움, 감정의 흐름, 글의 리듬, 단어의 소리 같은 것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 그래서 그때 번역하고 있는 그 작가의 문체를 닮는다. 작업하는 책의 작가가 만연체를 쓰면 일기도 문장이 마냥 길어진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를 번역 할 땐 불안과 함께 살아가게 됐다.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번역의 핵심은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다. 문장이 이해가 안 될 때,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머릿속의 작용을 통해서 이런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일단은 상상을 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인터넷을 찾아보고, 살아 잇는 작가라면 작가에게 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몇 단계를 점검하며 작업하지만 번역의 기준은 더 엄격해졌다. 

107

"의역이냐 직역이냐 하는 논쟁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독서가 지식을 줄 수도 있고, 감동, 평화 , ㄱ즐거움, 재미를 줄 수도 있어요. 결국은 그 책의 목적이 무엇이냐, 독서가 어떤 경험이 될 것인가, 목적에 맞춰 번역해야 한다고 봐요. 의미에 충실해야 하는 책이 있고 술술 잘 읽혀야 하는 책이 있어요.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가 없죠. 어린이책은 어린이들이 보고 좋아해야 하니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해요.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써야죠. 그림책을 작업할 때는 큰 소리로 읽어보고 아이한테도 읽어줘요. 듣기에 좋아야 하고 읽어줄 때 말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어린이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어른 입장에서 교훈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로서의 성취감, 어린이로서의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생각하면서 가장 편안한 단어를 고르는 거죠."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로 유명하다. 그 상황에 맞는 단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작가 에릭 호퍼는 "정확한 형용사를 찾기 위해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홍한별 역시 단어의 중복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스마트폰 앱 ' 유의어 대사전'을 활용하는데, 만약 wide 란 단어가 나오면 '넓다'라는 1차어가 자동으로 떠오르지만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면 안 좋으니까 같은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유의어를 찾는다. wode 는 크다, 너르다, 널찍하다, 광범위하다, 광활하다, 드넓다 등등 같은 뜻 다른 표현으로 제시된다. 그중 문맥에 가장 적합한 표현을 고른다. 

109

"(...)예를 들어 학술서나 고전 같은 것은 최대한 원저자의 의도와 원문을 존중하는 쪽으로 번역 해야 해요. 독자들도 탐구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으니까. 하지만 로맨스 소설이라면 원문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한 것보다 독자가 빨리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게 좋죠. 소설은 이야기의 맥락이 전부예요. 그 맥락을 못 잡으면 딴 얘기가 돼버리거든요."

110

그의 번역 비결은 시각화다. 즉, 어떤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한다. 만약 원서에 '어떤 도구를 들었다'라는 문장이 있을대, 그 도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 그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반드시 도구의 모양을 확인한다. 그래야만 '잡았다','집었다','들어 올렸다' 중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고를 수 있다. 전문 분야 서적의 경우 배경지식이 있더라도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확성을 기한다. 대중소설은 어려운 용어는 없지만 사전에 없는 구어적인 표현이 자주 나온다. 역시 이리저리 찾아보고 공부해야 한다. 어린이책도 그에 걸맞는 표현이나 언어를 고민해야 하니가 나름의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결론은 "번역이 만만한 책은 없다."

113

홍한별에게 육아, 애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조금씩 조금씩 아이를 놓아주는 과정이었다. 아이를 내려놓으면서 한편으로 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버렸다. 아이들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며, 아이가 어떻게 자라든지 엄마로서 자신은 아이를 받아주는 완충 장치가 돼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115

그녀라는 단어를 쓰면 문어체의 느낌이 나요. 그래서 저는 대명사 대신 '제인이 말했다'라는 식으로 고유명사를 쓰려고 해요. 우리 말은 주어를 생략할 때가 많으니까 웬만하면 빼고, 꼭 넣어야 할 때는 고유명사를 넣는 거죠. 

120

출판 번역은 평균적인, 최적의 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의외의 수, 다른 사람이 쓰지 않는 산뜻한 표현을 찾는 과정에 가깝거든요."

129

"대학원 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하려고 노량진 생활을 6개월 경험했어요. 그러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집에 내려가서 1년 넘게 살았죠.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시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나는 말하는 거랑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데 세상에 나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 많잖아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굳이 내 입, 내 글로 직접 전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저한테도 편집자가 친숙한 직업은 아니었는데작가가 있고 책이 있으면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을 거고, 책 만드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찾아보다가 편집자를 알게 됐어요."

133

"이게 다 깊게 생각하지 못한 탓이죠. 사실 영혼을 다해서 책을 만들었으면, 또 애초 편집 설계를 제대로 했으면 보도자료가 잘 안나올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 <비보호 자회전>편집자로서 가장 아쉬운 건 책 제목이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제목에 재난, 안전, 위험 같은 단어를 전면으로 내세운 책의 판매율이 너무 저조했다. 차라리 은유적인 제목을 짓고 부제를 명확하게 해주자는 계획을 세웠다.  (...) 결과적으로 뜻은 심오하나 독자가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직관적이지 않은 제목이 됐다. 이 책을 내면서 사회과학서는 은유적인 제목을 피하면 좋다는 것을 배웠다. 

141

그가 생각할 때 대중적 욕망의 큰 부분은 외국어 공부나 재테크 같은 것들에 닿아 있다. 대다수의 욕망은 급변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어떻게 하면 '홀로 또는 내 가족과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환희는 장기적으로 함게 모두가 잘 어울려 사는 방법을 사유하고 모색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지향이 또 '허튼 욕망을 좇는 대중'과 '고고한 나'를 구분 짓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기에 스스로 경계한다. 그리고 이제는 단지 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무수한 타인을 이해하기 이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아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45

"이건 된다 싶고 촉이 오는 좋은 원고가 사실 그리 흔한 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원고는 우선 제가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읽어서 재밌으면 돼요. 가령 금정연 작가 글처럼 자기 분야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먹힐 만한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그 자체로 유머러스한 글. 또 아무나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을 꺼내놓는 솔직한 글이나,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을 건드려 주는 글도 재밌죠."

어느 출판사 대표는 출간 원고를 감별하는 기준으로 '이 책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따져본다고 햇다. 그의 기준도 다르지 않다. 재미라는 정서적 가치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 인문서나 실용서에는 인식적 가치나 정보적 가치가 있겠지만, 그것 역시 정서적 가치와 상당 부분 교집합을 지닌다. 읽고 나서 뭔가 하나를 얻었다는 충족감은 '머리에 많은 지식과 정보를 넣어서 , 지적 욕구를 채워서 뿌듯하군'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뭔가 사람다운 일, 또는 고차원적인 일을 한 것 같아'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중시하는 '재미'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재미라는 요소를 기본으로, 손을 조금 보면 될 정도의 최소한의 문장력, 단행본 분량의 이야기를 엮어낼 집필 역량 등을 종합해 원고를 검토한다. 

167

"문학 책 디자인은 스토리에서 모티프를 얻어요. 본문을 집착적으로 봐요. 문체와 작품 분위기로 작업하는데, 문체가 건조하면 디자인도 건조하게 가는 식이에요. 그래서 해외 작품이랑 잘 맞아요. 해외 작품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지점이 제 생각의 프로세스와 잘 맞아요. 의뢰를 받으면 주로 제가 본문에서 소스를 찾지만 출판사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주기도 해요. 본문이 너무 어두우니까 표지는 밝게 갔으면 한다, 본문이 잔잔하니까 표지는 재밌게 해달라."

182

"이 직업을 갖기 전 스물다섯 살까지 저는 그냥 고졸에 알바하는 애였어요. 그런 저를 대하는 그 태도들과 말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대학교를 가고 문학동네라는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고, 독립해 지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들이 달라지거나 사라졌어요. 나란 사람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 내 위치가 변하면서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변한 거예요. 그게 한편으로 ㄴ씁쓸했죠. 출판사 와서 교양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았어요. 그 교양이 지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같은 거예요. 북디자이너가 겪는 최대한 의 몰상식한 일은 상대방이 연락을 끊는다든가, 혹은 디자인이 왜 이따위예요, 뭐 이런 말들 듣는 거 정도지만 제가 스무 살에 겪었던 건 차원이 달랐거든요.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많이 배웠어요."

214

책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 생산자의 손에서 소비자의 손으로 어떻게든 이전해야 한다는 냉철한 시장의 원리를 책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사실을 평범한 독자는 인지하지 못하고 인정하기도 어렵다. 정작 나는 돈을 주고 사면서도 책은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고귀한 성물인양 애지중지했다. 

229

"(...)책읽기를 취향으로 만드는 건 개별 출판사나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그건 국가에서 정책으로 펼쳐나갈 일이죠. 책 읽기 운동 같은 캠페인을 벌이자는 게 아니고요. 초등교육 과정부터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54

""MD 입장에서 '판매가 안 되는 좋은 책'은 애매한 책이에요. 판매가 많이 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믿어야 해요. 서점에는 이런 정서가 있어요. MD가 독자로서 어떤 책이 좋지 않다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무려 100만 명이 찾아 읽었다면 그 책에 대해 나쁜 책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어떤 역할이든 있어요. 누군가는 잠깐 위로를 줄 뿐이라고 얘기하고, 식자층은 비판하기도 하죠. 하지만 잠깐의 위로를 주는 책이 얼마나 귀햐냐는 거예요. 많이 판매된 책은 어떤 의미에서든 존중해줘야 한다는 태도가 있어요."

276

박태근은 출판예비학교 1기 시험에 나온 서술형 문제를 기억한다. '책은 독자를 어떻게 변화시키나.' '어떻게'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답안을 뭐라고 작성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질문만은 또렷하다. 무슨 영향을 끼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영향을 끼치느냐 물으니 바로 답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지난 시간은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박태근을 논리적인 아이로 유목민 소년으로 변화시켰고, 탐독가이자 애서가 청년으로 만들었으며, 출판 시장을 읽는 승부사이자 책의 외연을 확장하는 기획자로 살게 했다. "'책을 파는 사람' 이라는 짧은 문구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들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야만 '책을 파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이라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은, 그가 청춘을 다해 작성한 세상에 하나뿐인 답안지다. 

287

이 일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와 필요'를 읽어내는 정지혜의 능력과 감각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에 답답함을 느끼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가 라는 화두를 붙들어온 그가 몇 년 후 '사적인 서점'을 차려 그 익명의 독자들과 다시 책으로 조우하는 상황은 어떤 필연으로 다가온다. 

292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감이 생겼다가 쪼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주문제작형 가구점 '아이네클라이네'


296

"책과의 거리를 좁혀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어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한테 책을 소개해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책과 가까워지려는 사람에게 독서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도 좋구나, 내가 내가 갖고 있는 게 단점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손님들의 독서 차트를 작성하다보면 깊이 있는 책에 대한 강박이 느껴져요. 자신의 독서 경험을 터놓으면서도 가벼워 보일까 봐 걱정하거든요. 책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데 대부분 책 = 공부 로 인식해요. 가벼운 책을 읽으면 시간 낭비한 거 같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안되지? 생각했어요. 우리나라가 유독 책의 의미, 가치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책을 더 안 읽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서점 열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들어할 때 지인이 해준 말이 용기가 됐어요. 독서는 수준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고."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미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행위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엽서를 쓰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책을 멀리한 사람도 먼 곳에서 보내주는 엽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낸 한 권이 요즘은 책을 안 읽는다고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독서라는 즐거움으로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 하바 요시타카,<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316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 모드로 3년 반을 살았으나 권태로웠다. 상사들을 통해 10년 후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별로였다. 마침 학교 선배가 일본에 만화를 배우러 가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다른 삶을 모색하던 중 기자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후배의 권유로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감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0) 2018.07.09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0) 2018.07.08
위로하는 정신  (0) 2018.07.01
단단한 삶  (0) 2018.06.15
동물농장  (0) 2018.05.1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